한국의 향을 아시나요?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한국의 첫 향! 단향은 신라시대 전세계로 배합향을(조향) 수출하던 향 강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건강하고 이로운 향을 선보입니다.
자연을 사랑하던 옛 선인들의 마음따라 더 자연에 가깝게 다가갑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한국의 향문화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국의 향을 계승하는 단향은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감성을 어울림한 제품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약 2천여 년 전인 삼국시대 초기에 우리 조상들은 남다른 미(美)의식을 향유하여, 고도의 화장기술과 화장품 제조기술이 존재했음을 여러 기록과 출토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 향과 향로 등의 기록도 남아있다.
단군신화를 기록한 삼국유사(김일연 스님 저작)에는 우리 한국인의 첫 생활 근거지를 [묘한 향내가 나는 산]을 의미하는 지금의 묘향산, 첫 임금인 단군(壇君)의 단(壇)은 박달나무를 뜻하며 이는 단향(檀香)의 향나무를 의미하고 있다. 즉 한국사람의 첫 거주지가 향내가 은은한 묘향산의 박달나무 근처였고, 따라서 여러 제례의식 때 향나무 가지를 사르거나 향나무 잎(妙香山)이라 했고 짜서 나온 즙을 몸에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기록을 보면, 김유신이 향불을 피워놓고 무인의 기개를 펼쳤고, 신라의 진지왕 등 당시 임금의 침실에서는 향을 사용하여 사랑의 농도를 높였으며, 고구려의 평강공주가 짙은 향취로 온달을 사로잡았다는 내용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장면의 고분벽화와, 석굴암 석불과 에밀레종에 향로가 새겨져 있는 것, 그리고 향유병 도기들이 많아 출토된 것과, 신라의 남녀노소가 신분의 귀천에 가림 없이 난향(蘭香)과 사향(麝香)이 들어있는 향낭을 패용하였다는 증거들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초기부터 향수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놀라운 사실 중에는, 신라가 일본은 물론 아랍지역에 수출한 제품 중에 사향, 침향, 의향, 청목향, 그리고 항로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신라가 고품질의 향료를 제조했음을 기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당시 향수는 단일향의 제품도 있었지만, 잡향, 훈향, 훈의향 등 여러 향을 배합한 배합향수가 만들어져, 향료의 다양함 위에 여러 향을 배합하여 새로운 향을 제조할 정도로 신라의 향료 제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향수의 시작이 아랍이나 프랑스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의외로 우리의 향료가 그들 지역으로 전해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어 놀라울 뿐이다.